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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란?[시사픽] -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란? -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또는 왜 사는가? 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서 성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공과 행복.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그것이고, 그러하기를 기원하며 매일을 사는 세상 사람들의 삶의 해석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에 귀가 기울여집니다. 행복과 의미있는 삶이란 다른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합니다. 그러면서 의미있는 삶이란, 첫째는 소속감입니다. 내가 어느 곳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에, 직장에, 또는 어떤 사회에 속해 있지 않으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할까요?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동질적인 생각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주위에 없다면 내가 산다는 의미는 무엇 때문일까요. 소속감이 있을 때 인생의 의미는 살아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둘째는 목적입니다. 여기서 목적이란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말합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결국 무엇을 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뜻하는 것입니다. 결국 남에게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인가 그것이 삶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스토리 텔링입니다. 삶이란 나를 설명하는 큰 무대입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또는 자연인처럼 혼자 살든, 나에게는 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든 아니든 나에게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나의 스토리를 말하면서 자랑스러웠다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이요, 스스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스토리라면 그것이 실패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것은 남이 측정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스토리는 자기만이 가지는 자부심입니다. 자랑스런 나의 스토리를 말하는 것. 그것이 삶의 성공을 나늠짓는 잣대라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이런 몇 가지 중 하나, 또는 여러 개가 조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와 명예 여유등을 말하는 행복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불행진다는 사실에 새롭게 눈이 떠지게 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나의 행복과 성공의 근본이 어디서부터 시작될까를 분명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라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자녀가 한 가정 속에 사랑하면서 나의 소속감이 생기고, 삶의 목적이 생기며, 가족과의 길고 긴 스토리 텔링이 넓고 깊은 인생의 긴 여정 속에 하루하루 수놓아지며 내 삶의 무대는 장식되는 것 아닐까요.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과 가족 밴드를 만들어 휴일마다 음악실에서 연습하고 맥주를 마시며 즐거워했던 추억. 태풍 속에서 캠핑을 하다 혼비백산 산막 피신처로 피신하여 구조대를 기다리던 기억. 입시에 떨어진 아들을 위로하고, 선거에 떨어진 아버지를 위로하며 아들과 함께 밤새 소주를 들이키던 기억들.... 그 순간들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행운들에 감사하며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나의 스토리는 무슨 내용으로 텔링할 것인지를 천천히 생각하면서, 행복의 시발지와 종착지는 바로 가족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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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불장군(獨不將軍)과 줄탁동시(啐啄同時)[시사픽] - 독불장군(獨不將軍)과 줄탁동시(啐啄同時) -흔히 독불장군이라 함은 혼자 잘나서 남을 무시하고 마구 나가는 사람을 말하곤 합니다.그러나 이 말의 어원은 전혀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독불장군(獨不將軍)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당연히 그러합니다. 병사가 있어야 장군이 있는 것이지, 병사 없는 장군이 어디 있겠습니까.사실 장군의 빛나는 별은 병사들이 달아 준 것입니다. 병사들의 희생 없이 장군의 드높은 명성을 얻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병사들이 장군을 만든다고 하여도 과언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명장(名將) 밑에 약졸(弱卒)없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비겁하고 무능한 장군은 병사들을 속절없는 개죽음으로 몰아갈 뿐입니다. 장군은 병사들의 목숨을 지휘봉에 쥐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장군과 병사 중 누가 더 중요한 존재일까요?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둘 다 중요합니다. 둘 다 서로 의지해야 합니다. 상부상조를 하지 않아 살아남지 못한다면 누가 중요한지조차 따질 의미가 없습니다.독불장군(獨不將軍)이 인간사의 이치라면, 줄탁동시(啐啄同時)는 자연의 이치를 보여주는 절묘한 말입니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안에서 새끼가 쪼아대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는데서 나온 말입니다.줄탁에는 시간이 생명입니다. 상호 간에 시차가 생기면 병아리는 깨어나지 못합니다. 서로 쪼아주고 협력하면서 힘없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와 세상의 빛을 본다는 것은 정말 경이롭고 감동적인 장면입니다.그리고 이 신묘한 자연의 섭리는 인간 사회에도 커다란 교훈을 건넵니다. 개혁이든 혁신이든 무에서 유가 창조되기 위해서는 리더(leader)와 팔로워(follower)가 서로 협력하고 줄탁을 동시에 하면서 독불장군의 상호 존중으로 협력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세종시의 직원 여러분.우리는 최근 줄탁동시의 감동적인 일을 경험했습니다. 올해 우리 세종시가 행정안전부의 종합평가에서 전국 특·광역시 중에서 행정역량이 가장 뛰어난 지자체로 선정된 것입니다. 정량평가와 정성평가 두 분야 모두 최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역대 최고의 성적입니다.바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자 위치에서 직분을 다한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래에서 받쳐주고 위에서 끌어주며 산적한 과제들을 협심하여 해결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미래를 향하여 나간다는 그 동심동덕(同心同德)의 마음으로 줄탁동시로 함께 마음을 합하여 준 직원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 너무도 기쁘고 흐뭇합니다.직원 여러분, 고맙습니다.이 힘으로 더 똘똘 뭉쳐 세종시 역사에 남을 가슴 뭉클한 장면들을 만들어 봅시다.우리의 진심을, 우리의 역량을 믿기에 저는 오늘 더욱 큰 희망을 품어봅니다.올해는 유지필성(有志必成)의 해입니다.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여러분 수고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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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인가, 위기인가[시사픽] - 기회인가, 위기인가 -4.10일 총선이 끝났습니다.별안간 세상이 바뀐 듯합니다.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은 매우 의기소침해 있고, 승리한 야당은 권력은 투표에서 나온다라는 격언을 그야말로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총선이 끝나고 우리 국민은 새로운 정치의 무대에서 새로운 주인공들이 연출하고 감독하는 어쩌면 새로운 정치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와 시대를 살게 될지 모릅니다.그것이 우리나라 발전의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다만 진실로 새로운 발전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이번 총선을 통해 저는 우리 사회에 대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느꼈습니다.기회로 보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참으로 무섭다는 경계심을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작은 실수도 놓치지 않고 평가하는 국민들의 눈이 얼마나 예리한지, 국민에게 겸손하지 않은 정치인에 대해 얼마나 매서운지를 새삼 절감케 하였을 것입니다.이러한 국민들의 모습은 앞으로도 언제 노도처럼 급변할지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승자든 패자든 보다 더 겸손해지고 보다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희망을 봅니다.반면 위기로 보는 측면은, 총선 내내 심판과 비판으로 시종되었던 평가의 잣대였습니다.정책 공약이나 비전의 제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심판론과 비판론으로 과거에 몰입되어 반성이 아닌 청산의 언어 속에 미래가 실종되었다는 것입니다.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는 대단한 위기 앞에 직면하고 있습니다.생명과 재산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전쟁의 위기감, 그로 인한 급격한 경제의 쇠퇴, 동시에 확산되는 도덕성의 하락, 이기주의의 기승 등 생각해 보면 장래가 암울해지는 현상이 도처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인구와 지방의 소멸 등 우리만의 현안도 머리가 아픕니다.그럼에도 그러한 중대 이슈보다는 사람에 대한 비난과 복수가 난무하는 선거를 치루었습니다.정치의 본질은 권력분립이라는 철학에 서서, ‘견제와 균형’을 마치 바이블처럼 여기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의 정치사상은 조선의 병자호란 시절쯤인 400여년 전 농경시대 프랑스 왕의 권력을 견제하려는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산업시대를 넘어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살면서 우주경영까지 구상하는 지금, 이제 권력의 개념은 바뀌어야 하며 그 역할도 변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권력을 사람과 재원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볼 때, 현대의 권력은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만이 아니며, 기업과 언론과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SNS 등 수없이 다원화되어 있어, 단순히 헌법에 있는 삼권만으로 국민들을 지키고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시대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500년대 절대적으로 막강했던 군주로부터 또는 약소국이 살아남기 위해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고 주장했던 마키아벨리즘도 지금은 정신병자에 가까운 소시오패스로 지탄받는 낡고도 사악하기까지 한 행태로 치부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속성을 마키아벨리즘인 양 착각하고, 정치의 본령이 오로지 ‘견제와 균형’에 있는 양 생각하는 통념은 이제는 재고되어야 할 것입니다.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하고 있고, 무엇이 미래의 세상을 뒤집어 놓을지 불안할 정도로 예측이 불허되고 있습니다.어제의 선진국이 내일의 후진국으로 순식간에 전락될 위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국가 간의 경쟁도 영토나 자원이 아닌 지식과 기술의 전쟁으로 점점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전쟁마저 기술로 승부를 가리고 있습니다.그런데 국민을 지키는 정치의 이념이나 철학이 4, 5백년 전의 사상이라면 어떻겠습니까.선거에 있어서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누가 과거에 더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가에 국민들의 판단이 더 쏠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국민을 지켜주는 힘이기 때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저는 현대사회 나아가 미래를 향하는 새로운 사회의 정치이념은 ‘창조와 도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아무튼 정치인은 늘 권력에 탐욕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늘 혼란스럽습니다.하지만 흔들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어 정치가 혼란스러워도 사회는 안정됩니다. 진정으로 그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양보하지 않는 양심으로 세상을 맑고 평화롭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꿋꿋하게 있어야 합니다. 자랑스럽게 말입니다.바로 공직자 여러분입니다.창조와 도전의 미래전략수도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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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라는 이름의 두 모습[시사픽] - 경쟁이라는 이름의 두 모습 -로마 검투사들의 처절한 생존의 경쟁 상황.상대를 굴복시키지 않으면 내 목숨이 위태로운 숨 막히는 경쟁.살벌함 속에서도 쾌락과 흥분을 느끼는 관중들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 집니다.붕어를 수족관에 넣어 이동할 때, 메기를 넣어두면 붕어의 생존율이 월등히 높아진다는 설에서도목숨을 건 경쟁의 몸부림과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서로의 목을 향해 칼끝을 겨눈 검투사들이나 메기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붕어의 절규는 참으로 처절해보입니다.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에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경쟁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경쟁 없이 욕망이 채워지는 경우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테네시 윌리엄의 유명한 소설 ‘욕망이라는이름의 전차’에 ‘욕망의 반대말은 죽음’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욕망을 잃었다면, 죽은 목숨과 무엇이 다를까요.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경쟁이라는 선로를 달리는 것 같습니다. 선로 없이 전차는 달릴 수 없듯이 경쟁 없이 욕망이 채워지는 경우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우열을 가르는 경쟁이 늘 고달픈 것만은 아닙니다.또 다른 두 얼굴이 존재하고 있습니다.이를테면, 정(正)의 경쟁과 부(否)의 경쟁입니다.자신을 세워 이기는 정(正)의 경쟁, 남을 깎아내려 이기는 부(否)의 경쟁이지요.우리는 인내하며 성취하는 노력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고, 삶의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 경험을해왔습니다. 4년마다 올림픽을 기다리며 그들의 정직한 경쟁을 보고 싶은 것은 나태한 나를 일깨우는원동력이 됩니다.반면, 남을 깎아내려 자신을 높이는 부(否)의 경쟁을 보면 전혀 기분이 다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장미꽃도 백합꽃이 아닌 징그러운 다른 무엇으로 느껴집니다. 네거티브로 일관되는 부(否)의선거 경쟁을 보면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합니다.서로가 서로를 상처내고 입힌 상처를 헤집으며 상대를 쓰러뜨리는 막장의 경쟁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살면서 만났던 수많은 경쟁 속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기분을 느꼈나요.경쟁의 선로에 서서 자신을 연마해 상대와 정정당당히 겨루는 프로선수들의 경기...혹은 국민을 대표할 지도자를 선출하는 장에서의 경기...에서 말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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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기권[시사픽] - 죄악의 기권 - 아테네는 인류 최초의 민주주의 도시국가였습니다. 투표를 통해 그들은 지도자를 뽑거나 추방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투표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플라톤은 자신이 ‘아테네에서 시민이자 남자’로 태어난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노예나 여자는 투표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보통선거’를 극구 반대했습니다. 보통선거는 ‘중우정치’ 즉, 바보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정치로 몰락한다면서, 그리하여 ‘민주주의는 민주정치의 과잉에 의하여 망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라도 한 표를 행사하는 보통선거 제도는 실로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1789년 8월, 프랑스 혁명의 에서도 여성의 선거권은 배제되었었고, 이를 주장한 여성인권운동가 올랭프 드 구즈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미국 흑인들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1965년입니다. 노예가 거래된 1619년 이후 346년만이었습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 이후 2천년이 지난 후입니다. 그렇게 얻어진 ‘한 표’입니다. 그 ‘한 표’가 자신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차별과 싸우며, 시대에 저항해 얻어낸 권리인 것입니다. 실로 귀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패리클래스는 ‘정치가 더럽다고 초연한 양 투표를 하지 않는 자는 정치에 초연한 자가 아니라 사회에 무책임한 자’라고 비난하였고,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한 자가 받는 가장 큰 벌은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신곡으로 유명한 단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자에게 예비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중립이란 무관심과 무지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투표권의 기권은 권리가 아니라 죄악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투표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여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지도자를 뽑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투표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우정치’를 말하고, 민주주의 멸망을 경고했던 것입니다. 지도자는 능력과 도덕성을 둘 다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만이 우리의 운명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지켜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언행을 우리 자녀들이 보고 배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덕목이 요구되겠지만, 생각 없이 또는 잘못 생각하여 그런 능력과 도덕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투표하면 우리는 스스로 고생을 자청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정치가 나를 괴롭히고, 나보다 못난 사람이 나를 지배하는 비극도 결국 깊은 생각 없이 능력과 도덕성이 없는 사람에게 투표하거나 방관한 탓 아니겠습니까? 존 F 케네디의 말처럼 '유권자의 한 사람의 무지로 모든 사람들의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투표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중 나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 중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를 잘 할 사람‘이 아닌 '정치를 잘 이용해 먹을 사람'들의 사익을 위해 우리의 귀중한 한 표가 이용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입니다. 투표를 합시다. 이웃에게 서로서로 격려하여 투표를 하게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권한을 위임한 대표자들에게 이야기합시다. "공공의 선과 정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라!"라고 말입니다.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현대의 존 F 케네디의 말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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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의 운명[시사픽] - 미래사회의 운명 -저는 어느 때인가부터 소위 미래학자들을 별로 믿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을 풍미하며 절대 진리처럼 보였던 그들의 주장이 세월이 흐르고 보면 맞지 않는 것을 종종 보았기 때문입니다.1798년 영국의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과잉인구로 인한 식량부족은 필연적으로, 그로 인해 빈곤과 죄악은 불가피하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주장은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미쳐 찰스 다윈은 인구론을 읽고 진화론의 기제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그러나 어이없게도 이 ‘인구론’은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료와 농약 등의 개발로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는 기술혁신의 영향력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산아제한, 결혼 연기, 독신주의 등을 출산율을 낮추고, 빈민 구제 금지와 전쟁 등을 통해 사망률을 높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식량 문제보다 저출산과 인구감소가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1776년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경제는 시장에 자유방임하여야 하며, 그리하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le)’에 의해 가격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책은 오늘날까지 경제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명저로 그 영향력은 실로 지대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자본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을 초래하고 만다는 사실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1867년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부의 편중 및 노동가치를 무시한 자체 모순으로 멸망하고 만다’라는 ’자본론‘을 출간했습니다. ’자본론‘은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만, 그의 주장인 ’공산주의‘는 수많은 지성인을 광분시켜 혁명과 전쟁으로 수없는 사람을 희생시킨 끝에 구소련의 해체와 구동독의 붕괴, 그리고 북한의 실례를 통해 실패한 주장으로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인간사의 과거를 분석하는 것은 용이할지 모르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무모했던 것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다만, 이들의 이론이 비록 완전히 맞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지성을 깨우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인간 역사의 가장 큰 변화를 초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었던 그 불확실한 요소는 무엇이었을까요?저는 무궁무진하고 오묘하기만 하여 아무리 해도 알 수 없는 자연의 법칙, 그 중의 극히 일부만을 밝혀도 세상이 뒤집어지는 ‘과학기술’의 발전이라고 봅니다. 과학기술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채 세상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버리기도 합니다.미국은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고 수백만의 인명을 순식간에 앗아가면서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아직도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달라집니다.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쓰는 세대와 그런 기기를 알지 못하는 세대는 삶뿐만 아니라, 생각과 이념마저 다를 것입니다.지금 우리는 AI(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어쩌면 인간의 존재 자체를 재구성할지 모릅니다. 뇌와 신체에 인공 칩을 주입시켜 인간 이상의 인간인 사이보그(cyborg) 인간이 태어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수명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러한 생명공학적 신인류가 만들어진다면 인간은 신의 영역에 들어가는 단계로 종래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맞게 될 것입니다.신기술의 혜택이 모든 인간에게 골고루 돌아갈 것인가, 일부 인간의 전유물이 될 것인가에 따라 ‘슈퍼 인간’, ‘무용한 계급의 쓸모없는 인간’, 아니면 ‘아웃사이더로 무관한 인간’으로 ‘신분’이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히브리 대학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이런 시점을 '특이점(singurarity)'이라고 부르며 이 시기를 2050년 경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을 호모사피엔스(Homosapiens)에서 호모데우스(Homodeus)로 부르자고 합니다. 호모는 인간이라는 뜻이고 사피엔스는 지혜, 데우스는 신(god)이라는 뜻입니다.과학기술의 진화는 가속도로 진전하고 있습니다. AI를 비롯한 디지털 신기술은 행정을 비롯한 사회, 경제, 문화 등 전 분야의 질서를 빛의 속도로 재편하고 있습니다. 챗GPT는 수 초만에 글과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무섭습니다. 그러나 이에 뒤쳐져서는 ‘쓸모없는 무용인간’이 될지도 모릅니다.지난주 세종시와 행정안전부는 디지털플랫폼 정부에 발맞추어 '민원 구비서류 제로화'를 선언하였습니다. 2026년까지 1,498종의 민원과 공공서비스에 대해 구비서류를 전면 없앤다고 한 것입니다.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능동적인 도전 정신이 절실해집니다. 미래의 예측이 틀리기를 바라면서도 말입니다.우리는 창조와 도전의 호모사피엔스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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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이 사라져 버렸는가[시사픽] - '착한 사마리아인'이 사라져 버렸는가 -성경에는 적대시하는 사람이었지만 강도로부터 위험을 당하자 주저없이 적의 목숨을 구해 준 착한 사마리아인(Samaritan)의 이야기가 나옵니다.지난해 영국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며 비명을 지를만한 충격적인 사건들이 벌어져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수많은 목격자들이 보는 가운데 묻지마 범죄가 벌어지는데도 아무도 즉각적인 신고나 제지가 없이 방관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위의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하며 아무도 돕지 않았다는 것입니다.고대 중국의 전쟁과 약소국 침탈의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孟子)는 인간은 네 가지 본질적인 덕목을 가지고 있다고 설파했습니다.불쌍한 사람을 보면 측은히 여기고 - 측은지심 惻隱之心불의를 행하는 것을 부끄럽게 알며 - 수오지심 羞惡之心타인에게 양보할 줄 알고 - 사양지심 辭讓之心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안다 - 시비지심 是非之心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네 가지 덕목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이 네 가지 덕목으로부터 선(善)이 발생할 단초가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이 네 가지 덕목을 사단(四端)이라 했습니다.중국 전국시대의 국가들은 천하를 제패한다는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전쟁을 일삼았습니다.약육강식이 난무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연약한 백성을 구하는 백가쟁명의 각종 정치철학이 탄생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이때 불세출의 철학가 공자와 맹자는 인(仁)이라는 사상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인(仁)이란 현대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이라 한 것입니다.공자와 동시대에 인도에서도 성인이 태어났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부처입니다.부처는 수없는 고행 끝에 세상을 고통에서 구제할 법을 깨달아 설파했습니다.자비(慈悲)라 했습니다. 이도 현대어로 말하면 ‘사랑’입니다.그로부터 250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성인이 나타나 불의와 불행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매달릴 때까지 외쳤습니다.‘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모두 다 아시는, 예수의 가르침이었습니다.맹자는 말했습니다.‘너희 중에 누구라도 우물가로 기어가는 아이를 보면 달려가 안아 올리지 않겠느냐?’그것이 인(仁)의 마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최근 세종시 유림(儒林)에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두고, 의사(醫師)는 인술(仁術)을 행하는 선생이라며 우물가로 기어가는 아이에게 달려가는 것처럼,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환자에게 달려가라는 안타까운 말씀을 하였습니다.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겨졌던 생각은 틀린 것일까요? 아니면 갈수록 그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인가요?영국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은 사라져 버렸는가’라고 절규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인(仁)은 사라져 버렸는가’가 외쳐져서는 안되겠습니다.인(仁)은 인간의 본질이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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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니[시사픽] - 기록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니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나라는 몽고였습니다.중국 및 러시아, 유럽 대륙까지 지배했던 몽고제국의 강대했던 위대함을 넘어설 나라는 없었습니다.그러나 그 위대함은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몽고는 전성기 시절에도 문자가 없어 자신들에 의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파스파 문자를 개발했지만 대중화에 실패했습니다.)기원전 2천 년부터, 약 3,800년간 인류 최고의 문명이라 찬사를 받은 마야와 잉카문명.그 문명 또한 문자가 없어 기록이 없는 탓에 그들의 위대함은 전해 내려오지 못하고 그저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위대했던 그들 민족은 언어도 영혼도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반면 로마는 세 가지로 세계를 정복했다고 말합니다.영토, 문자, 법입니다.로마 영토의 유적지에서는 로마자가 발견되고, 세계는 지금도 알파벳이라 불리는 로마문자를 쓰고 있습니다. 또한 자유세계의 민법은 대부분 로마법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리나라 민법도 친족 상속법을 제외하고는 로마법을 계수한 것입니다.) 로마를 ‘영원한 제국’이라고 찬탄하는 이유입니다.세계의 4대 성인인 예수와 석가와 공자, 마호메트의 위대한 특징은 그들의 말씀이 제자들에 의해 정확히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위대함이 영원히 빛을 발하는 것은 경전이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이렇듯 세계를 지배했지만 기록이 없는 나라는 그 위대성이 스러져버리고, 한때 스쳐 지나가 버린 전설처럼 존재 자체가 희미합니다. 하지만 희미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곡되고 폄하되어 초라할 뿐아니라 못나고 악의적 존재로까지 남게 됩니다.역사는 기록의 싸움입니다.기록이 많은 나라와 세력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점령국이 맨 먼저 착수하는 일은 피지배국의 역사 왜곡이자 지우기입니다. 역사는 자존심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기록을 남기지 않은 민족이나 개인이 역사의 평가에서 이기기란 어려운 일입니다.결국 실패한 국가나 인물로 전락되어 자손대대로 수치심만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18년간의 유배 기간동안 그토록 많은 기록을 남긴 것은 역사에 죄인으로기억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우리나라는 기록의 엄중함을 절절히 깨달았던 기록 선진국이었습니다.조선왕조가 자신들의 일대기를 편찬한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제151호일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 유산입니다.조선 건국 당시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는 한양의 춘추관 사고와 충주의 충주 사고 두 곳 뿐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실록의 소실 가능성을 대비했습니다.성주와 전주에 추가로 사고를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실록을 보관하는 장소가 굳이 네 개씩이나 필요하나 했지만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세 곳 모두 소실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사고 신축은 신의 한수였습니다.바로 이 전주 사고가 지금의 전주 한옥마을입니다.이런 사례는 세계 어느 나라도, 왕조에도 없습니다. 427년간, 우리 조상들은 조선의 역사를 기록하기위해 천재적 노력을 다했습니다.왕의 어전에는 항상 두 명의 사관이 있었습니다.한 명은 왕의 말을, 다른 한 명은 왕의 표정을 기록했습니다. 오디오와 비디오로 현장의 정확한 모습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왕이어도 당대에는 실록을 열람할 수도, 수정할 수도 없게 했습니다.덕분에 사관은 공정하고도 소신있게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하며 객관적 실증력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이 정도의 기록문화 수준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가히 세계적으로 없을 것이라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요즘엔 데이터 클라우드, 디지털 아카이브, 언론문화가 발달해 과거의 사관을 대체하고 있고, 기록하는일도 수월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만큼 기록의 오류나 조작도 많아졌습니다. 가짜 뉴스마저 횡행하며기록으로 남고 있습니다.세월이 가면 진실이 밝혀지리라..., 후세의 역사가들은 제대로 평가해 주리라...하는 안일하고 낭만적인 생각은 요즘처럼 기록이 넘쳐나는 세상에 얼마나 통할지 알 수 없습니다.30년 전의 지나가는 말도 기록으로 남는 세상입니다.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또한 한마디의말도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세상입니다.새삼 일기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나의 한 주, 나의 한 달, 나의 일생을 이끌어갈 수 있는 미세한 감정과 생각, 해석들을 일기에 담아봤으면 합니다. 조선왕조 실록이 후손을 위해 남겨진 살아있는 역사이듯, 내가 남기는 흔적들이 훗날내 삶을 지키는 무기가 될지 모릅니다.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자신과 주변의 정확한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후세의 역사적 평가' 뿐만아니라, 나와 나의 조직을 왜곡과 조작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든든한 방패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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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관한 새로운 사회계약론[시사픽] - 여성에 관한 새로운 사회계약론 -어느 생물학자가 남녀 신체의 구조를 항공기와 자전거에 비유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남성은 자전거 부품으로 만들었고 여성은 항공기 부품으로 만들어졌다 할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합니다.지긋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을 하는데 남성들은 하지 못하는 그 대단한 일을 다 해내는 것을 보면, 확실히 항공기 부품을 가진 존재가 맞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성들이 남성보다도 더 오래 살지 않습니까?인류의 시초, 수렵사회에서는 여성이 가족의 중심인 모계사회였습니다.그 세월은 무려 수십 만년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여성이 일정 지역에 정착하는 농경사회로 변하면서 수난은 시작되기 시작하였습니다.남성의 근력이 여성보다 5배가 강하고, 노동력이 필수인 농경사회에서는 여성보다는 남성의 쓸모가 훨씬 컸습니다. 여성의 가장 큰 의무는 노동력 생산일정도로 아이를 못 낳으면 칠거지악이니 뭐니 하며 천대와 구박을 받았던 것입니다.더욱이 농토를 빼앗기 위한 전쟁터에서 스스로를 지키기도 어려운 여성들은 얼마나 나약하고 비참한 존재였습니까? 그러니 딸을 낳으면 길거리에 버리기까지 했고, 아들을 더 낳기 위해 부인을 여럿 두는 일부다처제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발언권도 없이 오로지 집에서 애를 키우고 근육보다 손이 필요한 끝없는 잔일과 농사일에 허리가 휘며, 남편의 바람기마저 용서해야 했던 여성들은 한이 뼛속까지 맺혀지는 굴종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이런 한국 어머니들과 여성들의 한 맺힌 억울함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 있을까요?그러나 시대는 또 변하고 있습니다.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고, 정보사회로 바뀌고, AI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근력도 토지를 빼앗기 위한 전쟁도 무의미해져 버린 과거의 시대에서, 섬세함이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는 여성들의 능력이 점점 더 빛을 발하고 그 정도도 강해지고 있습니다.정교한 손가락의 움직임, 풍부한 감성, 어휘와 표현력,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복합처리 능력은 자전거 부품인 남성보다는 항공기 부품인 여성이 우위일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전쟁마저 손가락을 움직이는 AI 전쟁이 대세라면 이제는 전쟁마저 여성이 좌지우지하게 될 것입니다.농경사회의 선입견으로는 보이지 않던 여성의 능력과 가치가 부각되면서, 어느새 남성이 거의 독점했던 분야에서도 여성이 뒤지지 않고 오히려 우위를 차지하는 역현상을 얼마든지 보게 되었습니다.그간 날지 못했던 항공기가 활주로라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맞이하면서 여성은 이제 하늘을 날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잠재력이 사회에서 어떤 역량을 발휘하느냐가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국가의 명운을 더욱더 좌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하지만 곤란도 생기고 있습니다.여성들의 사회 진출의 역량이 커지면서 출생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입니다.유럽에서는 남성 위주의 사회정책에 여성들이 ‘출산파업’이란 저항을 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며 국가의 존망조차 위협받고 있습니다. 마치 그간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가의 작용과 반작용의 물리 법칙이라도 보는 듯 합니다.이제 우리 사회의 일반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인류의 절반이라는 양의 수치를 넘어서 여성이라는 모성상과 그들의 새로운 시대적 능력에 대한 질적인 의식변화가 있어야 합니다.페미니즘이나 반페미니스트라는 도식적인 젠더 간의 대립이 아닌 여성의 삶과 그들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인식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의 지속적인 번영과 발전을 위해 여성들이 출산을 하면 양육은 국가 사회가 책임을 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인류는 늘 새로운 시대에 도전받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습니다.지금 인류는, 또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의 저출생이라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점이나 관념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장자크 루소는 18세기 국가와 시민간의 불평등이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자유와 평등이라는 자연권을 도입하여 ‘사회계약론’이라는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한 바 있습니다.인구의 지속적인 유지와 여성의 능동적인 사회적 활동이라는 여성 스스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성과 남성, 가정과 사회의 책임에 관한 새로운 가치관의 합의, 사회적 계약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더 이상 출생과 양육의 책임을 여성과 가계에만 미룰 것이 아니라 출생은 가정이, 양육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지는 새로운 ‘사회계약론’이 대두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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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34번째 3.1운동 민족대표[시사픽] - 숨겨진 34번째 3.1운동 민족대표-3월입니다.모두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때입니다.105년 전 우리의 조상들도 봄을 기다렸습니다.1919년 3월1일.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 발표와 이것을 받아 들고 팔각정에 올라선 청년의 외침...그리고 만백성의 함성...우리는 이때를 대한민국이 태동한 첫번째 봄이라 말합니다.민족대표 33인.그런데 사실은 숨겨진 34번째 인물이 존재합니다.푸른 눈의 독립운동가.캐나다인 선교사였던 프랭크 윌리엄스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한국 이름 석호필(⽯虎弼). 돌같이 굳은 마음으로 한국인을 돕겠다는 의미입니다.이 분은 33인 민족대표들과 함께 거사를 계획했고, 당시 일제의 만행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캐나다 선교본부에 보고하는 등, 동방의 변방에서 일어난 제국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폭압을 널리 알렸습니다.잔혹하기 짝이 없었던 제암리 학살, 수촌리 사건의 현장을 분노로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사진으로남겼고, 3.1운동때 벌어진 참혹한 상황을 1,300매에 걸친 책으로 집필하는 등그 분이 아니면 사라질 뻔한 진실을 새겨넣었습니다.'끌 수 없는 불꽃(quenchless fire)'.사본은 세브란스 병원 지하실에 감춰놓고,그 원본과 사진 기록을 캐나다로 갖고 돌아가 일본의 제국주의를 고발했습니다.그리고 한국의 위대한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렸습니다.3.1 운동의 현장을 기록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은바로 스코필드 박사의 사진과 증언 기록이 유일하다고 합니다.어찌보면, 참으로 아찔하기까지 합니다.이런 기록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한국의 독립운동사는 영영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고결국 없었던 것이 되었겠지요.스코필드 박사는 후에 어떻게 됐을까요.이듬해 캐나다로 추방되어 해방 때까지 한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만,1958년 이승만 정부가 국빈으로 초빙하였습니다.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훈하고 사후에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모셨습니다.박사는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한국인에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1919년 3.1운동을 이끈 한국인들을 기억하라.이 말은 내가 오늘의 한국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더 넓은 가슴과 뜨거운 인류애로 인간을 사랑한 진짜 한국인이 아닐런지요...한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외국인들은 또 있습니다.일왕의 폭탄 살해를 시도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열렬히 변호했던 변호사 후세 다쓰지,2004년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인물입니다.세종시 부강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네코 후미코(한국 이름 박문자).히로히토 왕세자 암살을 기도하여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감옥에서 돌아가셨습니다.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을 추서했고 그가 살았던 우리 시에서는 추도식을 열고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헌신을 기리기도 하였죠.헤이그 밀사를 파견한 선교사이자 사학자, 그리고 한글학자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그 분은 건국훈장뿐만이 아니라 2014년 한글날에는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국채보상운동의 중심이자 대한매일신보 창간인 영국인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Ernest Bethell).제암리 사건과 항일 의병의 존재를 사진 기사로 전 세계에 알린 종군기자 프레더릭 매켄지(FrederickMckenzie) ...이 분들 모두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분들입니다.저는 이런 외국인들을 보면서 국민과 인간은 다른 차원의 존재로 살아야 하고또 보아야 할 때가 있다고 믿습니다. 한 인간을 인간 자체로 보지 않고 국가를 개입시켜 바라본 오류를범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과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대한 외국인들...문득 미국 35대 대통령 존 F.케네디의 말씀이 떠오릅니다."국가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당신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라".여러분들은 국가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울 때,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